​1교시

​게임중독 아들에 대한 불교신문의 답변이라는 이름으로 항간에 화제가 되었던 글입니다. SNS뿐 아니라 각종 커뮤니티에서도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했었지요. 개인적으로도 아는 분이 쓴 글이라 그분의 통찰과 뜨거운 마음에 감동하고는 합니다.​ 앞서 1강에서 사실과 의미를 구분하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2강에서는 사실과 의미의 구분으로 최면과 최면 해제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아들이 게임에서 아이템을 사는데 100만 원을 결제했어요. 애가 게임에 미쳐서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일상에서 위와 같은 말을 들을 때면 자연스럽게 그 말의 사실과 의미가 결합된 맥락에 빠지고는 합니다. 위의 예시에서 게임 아이템을 사는 것에 100만원을 결제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애가 게임에 미쳐서 제정신이 아닌 것은 주관적 의미입니다. 사실과 의미의 결합은 하나의 맥락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맥락 안에 갇혀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예를 들면
​“큰일이네요. 카드 결제 시 문자를 엄마가 받도록 하세요.​”
​“해당 게임의 계정을 삭제하게 시키고 다시는 게임을 못하게 하세요.​”
​“그 나이 때의 아이들에게는 정상이에요. 옷이나 신발 대신 게임 내 아이템을 산 것 뿐이니 걱정 마세요.​”
​“하루하루 자신을 돌아보도록 일기를 쓰는 노트를 주세요. 자신을 돌아보지 못해서 그런 거에요.​”

위의 예시들은 모두 애가 게임에 미쳐서 제정신이 아님을 사실로 전제한 채로 고민한 대답입니다. 그 고민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사람은 자신이 오랜 시간 고민한 만큼 그렇게 만들어낸 해답이 옳다는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마음의 감옥에 갇힌 것이죠.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규정한 채, 그 속에서 만들어낸 해답은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사실과 의미를 구분하는 연습을 꼭 해보시라고 권한 것입니다. 사실과 의미를 구분하고 나면 사실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됩니다. 게임에서 100만 원을 결제했다는 표층 메시지 뒤에 숨은 심층 메시지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아이가 그것을 통해 무엇을 경험하고 싶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그 궁금함의 과정이 바로 페이싱입니다.
페이싱은 상대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에게 무조건 맞춰주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동의할 수 없지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이해하는체 하는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100만 원의 결제를 통해 경험하고자 했던 것을 함께 경험하고자 하는 것이 페이싱입니다. 그 경험의 끝에 다다른 의미는 100만원이라는 큰 돈 만큼 자신의 귀한 존재를 실감하고 싶은 소년의 목소리였지요.

바로 이 바른 페이싱의 과정을 충분히 거치고 난 이후에야 리딩이 일어납니다. 사실에 담긴 심층 메시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사실에 연결되어 있던 기존의 의미를 해제하고 새로운 의미가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를 밀턴 모델이라고 합니다. 이름만 들어도 아시겠지죠? 바로 밀턴 에릭슨의 이름이 붙었습니다. (제가 붙인것이 아니라 NLP 창시자들이 붙였습니다)


밀턴 에릭슨의 치유 사례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사례들이 마치 마술과 같다고 하여 에릭슨은 사막의 마법사(Wizard of the desert)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그런 밀턴 에릭슨의 최면 사례들은 NLP 창시자들에게 치밀하게 연구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그 결과를 정리한 내용은 NLP 창시자들에 의해 밀턴 모델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 에릭소니언 NLP 공부 모임 카페에서는 NLP 창시자들이 밀턴 에릭슨의 언어 사용 패턴을 분석한 도서 ‘밀턴 에릭슨의 최면 언어 패턴(Patterns of the Hypnotic Techniques of Milton H. Erickson, M.D.)’이 번역 중입니다.​

밀턴 모델도 에릭슨에 대한 관심과 이해 없이 가르치는 NLP 강사가 많다보니 여러가지 오류가 있습니다.
​“삭제, 왜곡, 일반화를 일으키는 언어 패턴이다.​”
​“메타 모델에 반대로 사용되는 언어 패턴이다.​”
이런 것들입니다.
간단하게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에 연결되어 있던 기존의 의미를 해제하고 새로운 의미를 연결하는 것 이것이 바로 밀턴 모델입니다.

페이싱과 리딩, 사실과 의미, 밀턴 모델까지 에릭소니언 대화 최면의 주요 개념을 설명해 드렸습니다.
에릭소니언 대화 최면이라 이름을 붙였지만 나 자신이 상대방을 바라볼 때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사실에 결합된 의미를 살피고 사실에 온전히 집중함으로서 스스로가 가진 패턴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기도 하지요.

최면과 최면 해제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일상생활이 곧 최면과 최면 해제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무의식적 반응과 습관화된 패턴으로 이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의식적인 훈련과 바른 교육만이 이를 깨고 생생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2교시​

​사실과 의미의 결합이 맥락을 만듭니다.
​1교시에서 ​‘게임중독에 빠진 아들​’이라는 맥락에 갇혀 괴로워하는 엄마가 맥락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과정을 분석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위 동영상을 바탕으로 어떻게 사람이 하나의 맥락에 빠져드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설득과 협상의 모든 비결은 맥락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맥락은 의미의 중첩을 통해서 발생합니다.
저는 의미를 세운다는 표현을 좋아합니다. 의미는 하나로 존재할 때는 힘이 약합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의미가 하나씩 세워지면서 맥락이 형성되면 그 전체 맥락은 부분적인 의미들의 합보다 더 강력한 힘과 권력을 갖게 됩니다.

자동차의 부품인 핸들, 엔진, 타이어, 구동축, 백미러 등은 개별적으로도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운송수단으로서의 특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부품들이 일정한 배열을 가지고 조립될 때 자동차라는 하나의 전체로서 부분의 합 이상의 기능을 갖게 됩니다.

비행기에서 좋은 좌석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의미들이 필요할까요? 설득과 협상을 잘하는 사람은 바로 이 의미를 잘 세우는 사람입니다. 위의 영상에 등장하는 이른바 비법이라는 것은 특정 맥락을 형성하기에 적절한 의미를 하나하나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위 영상의 예시에서는 아래와 같은 의미가 반복적으로 제안됩니다.
​나는 지금 매우 곤란한 상황이다. 도움이 필요하다.
이 항공사의 고객 대응은 최고며 지금까지 계속 만족해왔다.
당신은 친절하고 능력이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기꺼이 여러 가지를 양보할 여지가 있다.
우리는 한편이다 같이 고민해보자.

영상이 거의 마지막에 다다르면서 좌석 승급은 어려워졌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기존 좌석에 앉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시점에서는 주인공도 실패라고 여겼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지속해서 쌓아온 의미를 바탕으로 형성된 맥락 때문에 더 좋은 좌석을 주려는 방향으로 직원의 의식이 고정되어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체크를 통해 모든 열이 비어있어 홀로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좌석이 주어졌습니다.

승무원을 기만하는 위 영상의 주인공에게 불쾌한 느낌이 드실 수 있습니다. 혹은 외국이라 가능하며 우리나라에서는 통하지 않는 방법이라고 비판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영상으로 여러분께 전달하고 싶은 것은 ‘내가 체험 중인 곤란을 어떻게 전달하는 가’ 그리고 ‘의미의 중첩이 맥락을 만들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는가’입니다. 이 원리를 이해하면 영상에서 비법이라 소개한 이런저런 말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아집니다. 사실과 의미의 중첩으로 맥락이 만들어졌는가 아닌가. 그것을 발견하고 사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최면 암시라는 표현은 최면을 신비롭고 형이상학적인 마술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제가 사용한 ​‘반복적으로 제안됩니다.​’라는 표현과 같이 최면은 그저 일상적인 언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양한 의미의 조합으로 맥락을 만들어내는 과정, 그것이 최면입니다.
참 쉽죠?

여기까지 잘 이해하셨다면 유명한 상담가들의 사례, 스님의 즉문즉설, 설득의 심리학, 협상의 법칙 등
인간관계와 자기계발에서 다루는 거의 모든 것을 보는 ​‘눈​’이 달라졌음을 스스로 느낄 것입니다.

​3교시​

2교시에는 사실과 의미의 연결을 통한 맥락의 형성이 어떻게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드렸습니다. 3교시에는 개인을 넘어서 대중을 대상으로 사실과 의미의 연결을 다루는 선동과 세뇌에 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역사적으로 대중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선동과 세뇌의 대가로 두 사람을 꼽을 수 있습니다. 바로 PR의 아버지 또는 조작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드워드 버네이즈와 아돌프 히틀러의 최측근으로 나치의 선전과 미화를 책임졌던 괴벨스입니다. 그 중에서 에드워드 버네이즈의 사례는 그가 얼마나 사실과 의미를 다루는데 귀재였는지를 보여줍니다. 나무위키에서 발췌한 에드워드 버네이즈의 유명한 사례를 하나 읽어보겠습니다.

자유의 횃불 Torches of Freedom

1929년 미국 사회에 나타났던 여성 인권 운동...... 내지는, 여성 인권 운동의 탈을 쓴 마케팅 전략. 모든 문제의 시작은 20세기 초 미국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고정관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에 대중은 남성이 길거리에서 공공연히 흡연을 하는 것은 문제삼지 않았지만, 여성이 길거리에서 흡연을 하는 것은 좋지 않게 보았다. 물론 인권 운동의 관점에서는 이 역시 하나의 차별이었고 양성평등을 위해서는 사라져야 할 관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여성이 노상 흡연을 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서 안타까워하고 분개하던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담배 회사 마케팅부 직원들이었다.

1929년에 미국의 담배 회사 아메리칸 토바코(American Tobacco) 사(社)는 당시 신들린 듯한 마케팅 전법으로 소비자들의 심리를 가지고 놀던 에드워드 버니스(Edward Bernays)를 스카웃해 왔다. .. 중략..  그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조카로서 사람들의 심리를 광고와 마케팅에 활용하는 가능성에 관심이 많았고, 실제로 여러 성공을 거둔 바 있는 전문가였다.

아무튼 간에 시대를 앞서간 인권 운동가 버니스의 또 다른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여성 흡연 마케팅이 시작되었다. 버니스는 사교계에 입문한 젊은 여성들로 하여금 길거리에서 공공연히 흡연을 하며 행진을 하게 했고, “여성들의 노상 흡연을 허락하라!” 와 같은 정의감 넘치는 슬로건을 제작했다. 버니스는 한편으로 방송에 출연하여, “이들이 럭키 스트라이크 담배에 붙이는 불은 단순히 담뱃불이 아니라 여성들의 참정권과 같은 인권 운동에 있어 자유의 횃대에 불을 붙이는 횃불이다” 와 같이 멋들어지게 포장해 주었다.

버니스의 전략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담배 시장은 이 이후로는 100%만큼 증가했다. 수많은 여성들이 여봐란 듯이 길거리에서 담배에 불을 붙였으며 사회적으로도 이것이 그럴듯하게 여겨졌다. 참으로 간단하고도 순식간에, 남성과 여성이 모두 함께 사이좋게 담배를 구입해서 담뱃불을 빌려줄 수 있는 사회가 된 것이다. 그리고 후두암과 폐암의 평등이 실현된 것은 덤이다. 그리고 이는 이후 수십 년 동안 미국을 벗어나서 유럽, 인도, 아시아를 비롯한 제3세계로 퍼져나가, 세계의 각 개도국들의 담배 회사들이 여성 인권 신장이 이루어지는 데 발맞추어 담배를 “여성 자유의 상징” 으로 포장하는 광고를 만드는 것으로 반복되었다.

- 출처 나무위키

담배회사가 바라는 것은 여성의 흡연율을 높여 담배의 판매량을 늘리는 것이었습니다. 버네이즈는 이 목적을 위한 전략으로 ‘여성이 담배를 피우는 것’이라는 사실에 ‘여성의 인권’이라는 의미를 연결하였습니다. 이 캠페인의 한 부분을 인용하겠습니다.

“이들이 럭키 스트라이크 담배에 붙이는 불은 단순히 담뱃불이 아니라 여성들의 참정권과 같은 인권 운동에 있어 자유의 횃대에 불을 붙이는 횃불이다.”

자 지금까지 에릭소니언 기초 과정을 다 보신 분은 이 문장에서 사실과 의미를 구분하실 수 있겠지요? 사실과 의미를 연결하고 이 연결이 반복되면 맥락이 됩니다. 버네이즈는 끊임없이 담배와 여성의 자유를 연결하는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심지어 한날한시에 여성들을 고용하여 (알바를 풀었습니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며 행진을 하는 시위를 진행하였습니다.

​당시의 사진

​이 고용된 여성의 선발 기준도 까다로워서 너무 아름답지는 않지만 매력 있고 당당한 여성을 위주로 뽑았다고 합니다. 얼마나 정교하게 선동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렇게 맥락이 사회적인 동의를 얻으면 가치가 됩니다. 이렇게 사회적 동의를 얻은 가치를 이데올로기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 주위에도 수많은 이데올로기가 존재합니다.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강요되고 있나요? 또 특정 이데올로기에 고착되어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차별하고 있지는 않나요? 대중을 휘두르는 이데올로기의 힘으로부터 깨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사실과 의미를 구분해야 합니다. 또 누가 의도적으로 사실과 의미를 다뤄서 대중을 휘두르려고 하지는 않는지 잘 살펴봐야겠습니다.

버네이즈의 캠페인이 이루어지던 시대는 광고와 언론만으로 많은 대중에게 사실과 의미를 마음대로 제안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과 의미를 다루는 한 사람의 능력과 대규모의 자본력만 가지고도 대중을 대상으로 한 최면이 가능했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광고와 언론의 힘이 약해지고 SNS와 커뮤니티의 힘이 강해졌습니다. 많은 사람이 국정원의 댓글 조작을 비웃음거리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SNS 활동과 댓글 조작, 합성 이미지를 만들어 커뮤니티의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이 사실 또는 인물과 의미를 연결하여 대중에게 특정 이데올로기를 세뇌할 수 있음을 안다면 그저 비웃음거리 술안주 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SNS와 인터넷 미디어가 자신에게 어떤 최면적 현상을 일으키는지 경각심을 가지고 주의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무의식적인 반응과 습관적 패턴으로부터 깨어나 사실과 의미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자유롭게 다루는 에릭소니언이 되시기 바랍니다.

​후기 및 질문

밀턴 에릭스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마음의 변화를 이해하는 완전히 새로운 지도를 갖게 됩니다. 상담과 설득, 미디어와 세뇌까지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하나의 원리에서 이루어짐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위에서 배운 내용과 관련된 질문이나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사례를 댓글로 남겨주세요.
어떤 내용이든 좋습니다.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가는 과정에서 나도 다른 사람도 새로운 관점과 이해를 얻을 수 있습니다!